오미골에서의 삶

산골에서 살아가기..

시나브로84 2009. 2. 18. 15:46

내가 사십년간의 서울 생활을 접고 이 산골로 들어온지가 벌써 5년을 접어 들었다.

어찌 가서 살려고 하느냐고,

무엇을 하며 살려느냐고,

아이들 공부는 어찌 시키려하느냐고 ,

등등 아직도 친정 엄마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물론, 아이들 공부면에서는 시골서 아이답게 자라게 하는 것이 더 좋은 공부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또 미리 터를 잡고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을거란 등등의 말씀도 해 주시는 분도 계셨다.


헌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건데 과연 난 나 자신에게 무엇을 하며 살아왔을까? 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흙을 밟으며 살아가게 해 주고 싶다,

자연을 배우고 닮아가는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다,

남편이 좋아하니까,

등등으로

'사람은 어느 곳에 가든 적응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란 생각으로

스스로를 합리화를 시켜왔는데 그것도 모든 걸 합리화시키기 위해선 한도가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고일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산야초 효소를 담으며 자연이 주는 그 크고 깊은 것을 얻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생활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뭔가 2% 부족한 느낌을 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란 존재를 가족 속에 섞어 놓아서 바라보았지 하나의 독립체로 놓고 보질 않은 착오를 겪었단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날 다시한번 둘러 보기로 하였다.

이것이 진정 날 이 산골에 적응케 하는 것이겠기에.....


먼저 내가 이 산골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난 야생화 야생초를 좋아해,

푸르른 하늘과 밤하늘에 빛나는 저 무수한 별들이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도 계절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좋지.

햇님이 저수지에 비칠 때면 그 아른아른 거리는 물빛에 넋을 빼앗길 때도 좋고.

헌데 이건 생활하면서 매일 쳐다보는 것이 안되었다.

내가 인식하며 한번 더 바라 봐 줄때 비로소 나의 눈 속에 들어 왔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이 산골에서 살아남은 것이겠지만...


하여 난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으로 먼저 눈을 돌렸다.

그리고 무조건 시도를 해 보는 쪽으로 맘을 먹었다.

산에 고사목들이 많으니 고사목을 가져와서 조각도로 조각을 해보고.

도자기 굽기-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던 중 시립박물관에서 적은 액수로 배울 수 있었다 -에도 도전을 해보고,

이것이 나의 시작점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서울에 살 때도 주민자취센터를 이용해서 저렴하지만 확실하게 운동을 배울 수 있었단 생각에

이번엔 시홈피에 들어가 보았다.

'야생화 가꾸기'란 문구가 들어있는 원예생활 연구회가 눈에 띄었다.

좀더 많은 야생화를 배울 수 있겠단 생각으로 그 연구회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산야초효소를 담가야하는 시기와 맞물릴 때면 한달에 두 번인 이 시간도 내겐 허락되질 않았다.

그러다 일년이란 시간이 훌쩍 넘어가 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