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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골에서의 삶

밥도둑

by 시나브로84 2004. 11. 23.

운학골의 아침은 그리 쉬이 만날 수 없다. 친구가 오는 주말외엔....

아직은 그 곳에서 완전한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집도 아직 미완성이고 또 .....

하여 일이 있을 때면 이곳 송계에서 운학으로 간다.

요근래엔 배추를 뽑고 저장을 하려고. 또 지난번에 딴 잣을 정리하고 달맞이꽃씨도 정리하고.

즉 말하자면 겨울 채비를 하려고 주중에 막내 대한이만 데리고 아침부터 갔다.

먼저 아이와 마누라가 추울까봐 남편은 불을 피우느라 분주하고

난 그 새에 가져온 달맞이 꽃씨를 털고, 줄긴 훗날 거름이 되라고장작더미 불구덩이로

훌쩍 집어 던져 온기도 느끼면서재를 만들고.

아들 녀석은 그곳에 가면 먼저 잡는 것이 호미며, 괭이며 잡고는 땅을 열심히 파고.

제딴엔 무언가 하는 것이라며 종알종알 거리며 하지만 엄마가 보기엔 흙투성이가 되고 마는 것이 ㅉㅉ....

남편이 불을 만지니 자기도 불을 피운다며 얼쩡거리는 것이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곧잘 그럴 듯하게 흉내를 내기도 한다.

이젠 남편과 함께 잣 까기 시작!

대한이 여기도 아니 끼어 들 수 없겠지.

아니나 다를까 그새 합류해서는 잣을 까는 것이 아니라

돌하나는 뉘어 놓고 그 위에 잣을 하나 놓고는 다른 돌하나 들더니만 잣을 내리 친다.

잣을 까먹겠다고 덤비는 폼이라니..... 저러다 제 손을 찧고 말겠군.

이도 아니나 다를까 영락없이 손을 찧고 으앙~~~ 울음을 이내 터뜨리고

난 달래주며잣을 하나 까서 입에다 쏘-옥 넣어 주니 울음을 뚜---욱 그치고 다시 잣까기를 시도한다.

내 언제 돌에 찧었나 하듯이.....

이젠 손을 찧어도 아랑곳 않고 혼자서 돌을 치며 까 먹는데 흙을 먹는 것인지 잣을 먹는 것인지.....

시간도 흘러 점심 때가 되었다.

남편은 석쇠를 부지런히 씻고 난 나대로 쌀을 씻어서 밥솥에 앉히니 남편 왈 자신이 밥물을 맞춰야 한단다.

그건 맞는 말! 운학에선 남편이 더 잘한다.

해서 남편이 밥물을 맞춰주고 난 다시 밥솥에 얹고 오니 남편은 가져온 고등어 자반을 석쇠에 터--억 얹더니만 불땐 장작더미에서 숯불을 꺼낸다. 그것도 불도 없는 숯으로만.

거기에 석쇠를 얹는데 난 이상히 여겨 물었다.

그래도 구워지느냐고 그러니 남편왈 이것이 원적외선으로 은근히 구워지는 것이니 그 맛이 일품이란다.

난 설마 하는 맘이었지만 한편으론 은근히 기대하며 익기를 기다리는데 고 냄새 정말 기다리기 힘들게 한다.

은근히 올라오는 생선 구이 냄새가 내 뱃속은 더 허기지게 하고

지글지글 구워지는 모양새는 혓끝에 침이돌도록하며

천천히 구워지는 것이 나의 인내심을실험하였다.

이젠 생선도 다 구워진 듯하여 상을 차렸다.

갓 한것이어서 구수한 내를 풍기는 밥에잡초와 벌레와 서리와 함께 시간을 보낸 배추도 한포기 부-욱 잘라서 산에서 내려오는 물에 씻어서쌈장과 함께 올리고 김장김치 한포기에 숯불에 구워낸 생선을 올리니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그곳에 있던 우리 세식구!

말이 필요가 없다.

다만 아들 녀석이 배추쌈에 밥을 넣고는 쌈을 싸서 먹는 모양새가 또래의 아이들 같지 않은 모습에 남편과 "어쩜!" 하는 말 외엔.....

밥은 어느새 어디로 갔는지.....

밥도둑이 다녀갔나?ㅎㅎㅎ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아이와 나도 이렇게 시골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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